Search

[김세훈의 스포츠IN] 스포츠에서 경쟁을 곡해하지 말라 - 스포츠경향

몇 해 전 어떤 교육감이 이런 말을 했다.

“스포츠에서, 선의의 경쟁은 몰라도, 경쟁은 지양해야 한다.”

순간 당황했다. 교육감이 스포츠에 대한 이해가 이렇게 부족한가 싶었다.

스포츠에서 경쟁은 나쁜 게 아니다. 경쟁은 갈고닦은 기량을 상대와 겨뤄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과정이다. 대학시험, 취업시험, 국가고시 등 거의 모든 시험이 경쟁이다. 경쟁을 통해 좋은 성적을 받은 사람이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곳에 취업한다. 우리 모두 이런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도서관에서 밤을 새고, 다양한 체험과 스펙을 쌓고 있지 않나.

신유빈이 3일 일본 도쿄체육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 탁구 단체전 8강전에서 포핸드 공격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유빈이 3일 일본 도쿄체육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 탁구 단체전 8강전에서 포핸드 공격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반 시험에서는 경쟁이 바람직한데 스포츠에서는 경쟁이 지양해야 할 것인가. 어이없는 발상이다. 대학시험, 취업시험, 국가고시를 즐기기 위해서 준비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프로선수, 실업선수, 직업선수를 꿈꾸는 학생 선수 등 스포츠를 직업으로 간주하고 하는 사람들에게 경쟁은 본질적이며 필수적이다.

시험에도 규정이 있듯이 스포츠에도 규정이 있다. 규정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룰로 모든 종목마다 오랫동안 다듬어졌다. 규정에 따라 훈련도 하고 경기도 치르고 평가도 한다. 규정은 모든 팀, 모든 선수에게 평등하게 제정됐고 평등하게 적용된다. 규정에 의해 스포츠가 진행되면서 순위, 성적, 승패도 가려진다. 올림픽도 그렇고 프리미어리그도 그렇고 미국프로농구도, 미국프로야구도 그렇다. 국내 프로스포츠, 국내 모든 대회도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선의의 경쟁이라는 단어를 아무런 고민 없이 쓴다. 얼핏 듣기에는 좋은 뜻 같지만 사실 엄청난 선입견이 포함된 표현이다. ‘선의의’가 붙지 않은 ‘경쟁’은 나쁘다는 인식을 깔고 있기 때문이다. 경쟁은 사회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이뤄진다. 그리고 우리는 그걸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공정하다고 여긴다. 스포츠에서 경쟁도 마찬가지다.

서재현이 6일 도쿄올림픽 스포츠클라이밍 여자 콤바인 결승 중 볼더링 경기에서 문제를 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서재현이 6일 도쿄올림픽 스포츠클라이밍 여자 콤바인 결승 중 볼더링 경기에서 문제를 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스포츠든, 시험이든 경쟁은 불가피하다. 모든 경쟁에서 중요한 것은 규정을 지키면서 공정하게 이뤄지느냐 여부다. 시험문제가 유출됐다면, 채점자가 답안을 고쳤다면, 규정이 누군가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졌다면, 면접자가 특정 수험생에게 좋은 점수를 줬다면, 우리는 분노한다. 경쟁이 올바르게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 대해 우리는 불공정, 사기, 박탈 등 험한 표현으로 비난할 수 있고, 비난해야 한다. 스포츠도 규정을 어겼다면 역시 마찬가지다.

도쿄올림픽이 끝났다. 우리가 진정으로 경쟁 없이, 성적 없이, 승리 없이 스포츠를 즐긴 것일까. 성적 지상주의까지는 아니지만 우리는 승리, 성적, 기록에 환호했고 박수를 보냈다. 만일 여자배구가 4강에 오르지 못했다면 우리가 지금처럼 여자배구를 주목했을까. 우상혁, 황선우가 엄청난 기록을 세우지 못했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지금과 같이 큰 기대를 걸까. 태권도 인교돈이 메달을 땄지 못했어도 우리가 지금처럼 그를 암을 이겨낸 인간 승리자로 칭찬할까. 양궁이 노골드에 머물렀다면 우리가 지금처럼 큰 관심을 보일까. 근대5종 전웅태가 한국 최초 메달을 따지 못했다면 우리가 그의 이름을 기억이나 할까. 신유빈, 서채현이 메달을 땄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 크게 환호하지 않았을까. 사상 최초로 올림픽에 출전한 럭비팀이 5경기 중 단 한 번이라도 이겼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 많은 관심을 보이지 않을까. 야구가 금메달을 땄어도 지금과 같은 강도로 그들을 비판할까.

우상혁이 1일 일본 도쿄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육상 남자 높이뛰기 결전에서 2.35m를 성공시킨 후 기뻐하고 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우상혁이 1일 일본 도쿄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육상 남자 높이뛰기 결전에서 2.35m를 성공시킨 후 기뻐하고 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우리는 전문 선수들을 성적, 기록, 승리 중심으로 이해하고 평가하고 있다. 우리는 성적을 낸 선수와 팀에 대해 그렇지 못한 팀과 선수보다 더 집중하고 더 환호한다. 이건 인지상정이고 상식인 동시에 경쟁이라는 주요한 스포츠 본질에 대한 존중이기도 하다. 스포츠에서 경쟁이 잘못됐고 지양해야 한다는 말이 더이상 들리지 않기를 바란다. 스포츠에서 선의의 경쟁을 운운하는 것은 경쟁이 지닌 진정한 의미를 모른 채 스포츠에 색안경을 쓰고 있다는 걸 자인하는 꼴이다.

Adblock test (Why?)

기사 및 더 읽기 ( [김세훈의 스포츠IN] 스포츠에서 경쟁을 곡해하지 말라 - 스포츠경향 )
https://ift.tt/3gaCyy5


Bagikan Berita Ini

Related Posts :

0 Response to "[김세훈의 스포츠IN] 스포츠에서 경쟁을 곡해하지 말라 - 스포츠경향"

Post a Comment

Powered by Blogg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