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비극적인 일이 발생하고 나서야 체육계의 고질적인 병폐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온다. 성과지상주의,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돼온 지도자들의 폭언과 폭력, 이를 막지 못한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를 향해 비난을 넘어서 분노가 인다. 처음 듣는 얘기도, 어제오늘 일도 아니다. 빙상계의 성폭력 사태에 온 국민이 경악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각종 대책이 나온 지 채 일 년도 안 됐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에 절망스럽기까지 하다.
국가인권위원회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이 지난해 여름 17개 광역지방자치단체와 40여개 공공기관 소속 실업 선수 12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성인 선수의 33.9%가 언어폭력을, 15.3%는 신체폭력을 겪었다고 답했다. 11.4%(143명)는 성폭력까지 당했다. 특히 신체폭력의 경우 응답자의 8.2%가 '거의 매일 맞는다'라고 답했고 67.0%는 신체폭력을 당해도 아무런 대처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가해자는 남성 선수의 경우 선배 운동선수가 58.8%, 여성 선수의 경우는 코치가 47.5%라는 통계까지 나왔다.
최숙현 선수의 죽음과 관련해 체육계 못지않게 소속 지방자치단체의 관리 책임을 들여다봐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개최 붐을 타고 생겨난 지자체 스포츠팀은 1990년대 중반 지방자치제도 도입과 정착 과정에서 그 수가 급증했다. 스포츠의 인기를 업고 지역 주민의 표를 하나라도 더 얻어보려는 자치단체장들이 인기 종목 스포츠팀을 잇따라 창단했다. 한동안 투자가 시들한 시기도 있었으나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또다시 시도마다 실업팀 육성 붐이 일었다. 빡빡한 지자체 예산을 쪼개 투자해야 하는 일이다 보니 지역마다, 종목마다 부침이 컸고, 지자체장이 바뀔 때마다 스포츠팀이 생기거나 없어지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각종 비리와 폭력, 인권유린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스포츠팀에 문제가 생기면 가장 손쉽게, 일단 팀부터 해체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속 지도자와 선수들이 떠안아야 했다.
최 선수가 소속됐던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과 같이 시군구에서 운영하는 지자체 스포츠팀 또는 직장운동부의 경우 운영이나 관리ㆍ감독의 주체는 분명 해당 지자체다. 지역체육회 소속으로 돼 있는 스포츠팀 역시 지자체 예산으로 운영되는 만큼 감독 책임은 지자체장에게 있다. 선수와 지도자를 채용해 계약을 맺고 관리를 책임져야 할 실무자가 전문성이 없는 공무원이거나 아예 인맥으로 연결된 지역 체육계 인사이다 보니 선수들의 고충 따윈 그냥 묻힐 수밖에 없는 구조다.
최 선수의 부모 역시 올해 2월 초 경주시를 찾아 담당 공무원에게 훈련 중 가혹행위를 당했다는 민원을 제기하고 징계를 요청했으나 묵살당했다고 한다. 결국 최 선수는 지난 3월 초 팀 감독과 팀 닥터, 선배 선수 2명을 폭행 등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고 대한체육회가 운영하는 스포츠인권센터에도 폭력을 신고했지만 끝내 그 어디에서도 보호받지 못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4일 페이스북에 "너무 미안하다. 최숙현 선수의 안타까운 죽음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며 "서울시의 울타리 안에는 유사한 일이 없는지 살펴보겠다. 어떤 폭력과 인권의 침해도 용서하지 않겠다"고 적었다. 경주뿐 아니라 각 지역사회에서도 '남 일이 아니다'라며 자성과 대책 마련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주낙연 경주시장은 "트라이애슬론 선수단은 경산에 숙소를 두고 훈련해왔기 때문에 내부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관리ㆍ감독을 철저히 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면서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팀 해체 등 강력한 조치 및 예방책을 강구하겠다"고만 하고 입을 다물었다. 대통령까지 나서 철저한 진상 조사를 지시한 만큼 이번엔 체육계의 악습과 구조적인 문제가 개선될 수 있도록 문체부와 대한체육회에 더해 지자체들도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
/조인경 사회부 차장 ikjo@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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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08, 2020 at 09: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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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시각] 지자체 스포츠팀, 책임은 누가 지나? -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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