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세대’ 주링허우·링링허우 중심으로 공세적 민족주의 폭발… “스포츠는 반드시 이겨야 할 전쟁”
상대국 이의제기땐 “소국이 감히”·자국 귀화선수 실수에도 거센 비난… 근대화前 ‘최강대국 회귀’ 향수 깔려
베이징=박준우 특파원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은 대회 초기 편파 판정 논란 속에서 전 세계가 2위 경제대국인 중국이라는 나라를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경제성장과 함께 중국 내부에서 무르익은 공세적 민족주의는 대회 기간 내내 곳곳에서 터져 나왔고, 타국과 타민족에 대한 배타적 차별과 질타 역시 끊임없이 분출됐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전장(戰場)은 바로 SNS로, 중국인들은 자국·타국을 가리지 않고 패배에 대해 냉혹한 비판을 쏟아냈다. 특히 타국에서 이의가 제기되면 집단적으로 이를 매도하는 과정에서 강한 공격성마저 감지됐다. 중국의 ‘전랑(戰狼·늑대) 외교’로 대표되는 공세적 민족주의가 스포츠 분야에서까지 그대로 적용된 셈이다. 베이징동계올림픽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중국몽’ 비전을 대내외에 과시하는 이벤트가 아니라, 중국이 갈수록 더 오만해지면서 과거처럼 중화주의에 기반한 ‘위험한 대국’이 될 수 있다는 비관적 시나리오의 가능성을 드러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전문가들도 “중국인들의 강한 민족주의 성향과 대국주의적 과시욕이 올림픽이라는 촉매제를 만나 강하게 타오르기 시작했다”면서 우려했다.
◇중국의 ‘중화(中華)사상’ ‘대국주의’는 패배를 용납하지 않는다= 이번 대회 중국의 ‘메달밭’인 쇼트트랙에서 자국 선수들의 금메달 획득에 대한 석연찮은 판정에 한국 등이 이의제기에 나서자 중국 네티즌들은 한목소리로 한국과 한국 선수들을 매도하고 자국 선수들의 성과를 찬양하고 나섰다. 사실 이번 동계올림픽뿐만이 아니다. 올림픽 개막 직전 열린 2022년 카타르월드컵 최종예선에서 중국 대표팀이 베트남에 1 대 3으로 패하자 중국인들은 자국 대표팀을 강하게 질타했다. 반면 여자 축구 아시안컵에서 중국이 한국을 꺾고 우승하자 이들에 대한 과도한 찬사가 쏟아졌다. 영웅 아니면 패배자라는 양극단만 존재하는 셈으로, 지난해 8월 2020 도쿄올림픽에서도 성적이 좋지 못한 선수들은 귀국 뒤 “인민들에게 죄송하다”며 사과까지 해야 했다.
지금 중국인들에게 스포츠 경기는 일종의 대리전쟁이다. 1840년 아편전쟁에서부터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까지, 이른바 백년국치(百年國恥)에서 벗어난 중국의 자신감을 어떤 식으로든 드러내고 싶다는 심리가 스포츠 경기에서 작동하고 있는 것. 전통적인 정치·안보·경제 분야에서는 미국 때문에 여전히 우월성을 드러내기 힘든 만큼, 스포츠 경기에 더 집착하게 되고 이게 중국의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는 태도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쉬궈치(徐國琦) 홍콩대 역사학과 교수는 “중국인들은 스포츠 종목에서 좋은 성적을 내 우월성과 강함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며 “중국인들에게 국제스포츠이벤트는 전쟁과 같으며 그들은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고 해석했다.
◇특혜 귀화자·타국엔 더욱 강한 ‘뭇매’… 중화·대국주의 만난 민족주의 부작용 우려 = 귀화 선수들에겐 이 잣대가 더 엄격하게 적용된다. 지난 6일 피겨 단체전에 참가했던 귀화 선수 주이(朱易)는 연기 중 엉덩방아를 찧자 중국 SNS인 웨이보(微博)에 ‘주이가 넘어졌다’는 해시태그가 무려 2억 회 이상 조회될 정도로 거센 비난을 들어야 했다. 미국 대표로 출전했던 피겨 남자 싱글 금메달리스트 네이선 첸이나 헝가리 국적의 중국계 쇼트트랙 선수 등에게도 중국을 저버린 데 대한 강한 비판이 쏟아졌다. 한 전문가는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중국 국적만을 얻었다는 반감이 공정성을 강조하는 현재 중국 문화 속에서 두드러진다”고 말했다.
외국에 대해서는 더욱 적나라하다. 쇼트트랙 남자 1000m에서 황대헌과 이준서의 석연찮은 실격 판정에 이의가 제기되자 중국 SNS상에는 “항상 반칙을 일삼는 한국이 공정한 심판을 만나 떨어졌다” “소국이 감히…” 등의 반응이 올라왔다.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에 나섰던 차민규가 시상대를 손으로 쓸고 올라간 데 대해서도 민감한 반응이 쏟아졌다.
중국인들의 이 같은 태도에는 근대화 이전 세계 최강대국이었던 중국의 중화사상·대국주의에 대한 회귀 향수가 짙게 깔려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시 주석은 2013년 6월 미국에 ‘신형대국관계’를 제안했는데, 당시 일각에서는 중국의 강대국 중심 세계관을 보여주는 것으로 중견국과 약소국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우려를 내놓기도 했다.
문제는 이 같은 중국 중심적 사고가 인터넷과 SNS에 익숙한 주링허우(90後·1990년대 이후 출생자), 링링허우(00後·2000년대 이후 출생자) 세대와 만나면서 더욱 폭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 세대는 중국 공산당의 강화된 애국주의 교육을 받고 성장한 세대로, 강한 민족주의 의식으로 무장돼 있다. ‘샤오펀훙’(小粉紅)이라 불리는 맹목적 애국주의 네티즌들의 활동이 강성해지며 인터넷 여론도 갈수록 강한 국수주의 성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옌쉐퉁(閻學通) 칭화(淸華)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최근 조사결과 중국 내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는 중국만이 정의롭고 결백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 당국도 중국 내부 콘텐츠에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서도 외국에 대한 음모론과 가짜뉴스는 별로 단속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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