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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은 사람 있는데, 때린 사람 없다? 스포츠 폭력은 왜 사라지지 않나 - 주간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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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폭력'은 부당하거나 불법적인 방법으로 신체적 손상을 가져오고 정신적·심리적 압박을 가하는 물리적인 강제력을 말한다.

최근 철인3종경기(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출신 최숙현 선수가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다. 고인은 정체를 알 수 없는 '팀닥터'의 폭행, 이를 묵인하고 동조한 감독과 선배 선수들의 가혹행위를 견디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더욱 놀라운 것은 가해자로 지목된 감독과 선수 두 명이 관련 혐의를 철저히 부인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6일 국회 상임위원회 선수 인권 침해 현안 질의에 참석한 세 명은 짜여진 대본을 읽는 것처럼 일관된 목소리를 냈다.

폭행이 있었냐는 질문에 감독은 "그런 적 없다. 관리 감독 소홀에 대한 잘못은 인정한다"고 말했고, 폭행 당사자로 지목된 여자 선배 역시 "그런 사실이 없다"라고 부인했다. 또 다른 남자 선배는 "폭행한 적이 없으니 미안하다고 할 일도 없다"고 맞섰다.

목격자의 일관된 진술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법적인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폭행 혐의를 철저하게 부인했다. 대한철인3종협회 스포츠공정위원회는 다수의 피해자가 외치는 목소리가 더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 감독과 여자 선수에 영구제명, 남자 선수에 10년 자격정지 징계를 내렸다.

맞은 사람은 있는데, 때린 사람은 없다. 피해자는 평생 기억에 남지만 가해자는 기억조차 없다. 성적을 내야 하는 체육계 특성상 어쩔 수 없는 관습이라 말하고 이를 위해 행하는 폭력을 '지도'라 말한다. 대체 스포츠 폭력은 왜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너희들이 스포츠를 알아? 원래 다 이렇게 하는 거야

작년 1월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는 어린 시절부터 조재범 전 코치에 상습적 성폭행을 당한 사실을 폭로했다. 엘리트 체육의 대표주자였던 쇼트트랙에서 불거진 성폭행 사건은 충격 그 자체였다. 국민들은 비상식적 행위에도 불구, 성적만 내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는 구시대적 발상에 분노했다.

정부는 시스템 정비에 나섰고 관리·감독의 책임이 있는 대한체육회 및 산하단체, 각 지도자는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하지만 여전했다. 경기력 향상이라는 허울 아래 최숙현을 향한 폭력은 이어졌고, 선수는 생을 달리했다.

시작부터 그랬다. 지난 1964년 도쿄올림픽에 나선 선수단이 실망스러운 성적을 보이자, 국가는 위상을 높이고자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을 하나의 정책으로 여겼고 재능 있는 선수를 집중적으로 육성했다.

금메달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체벌과 위협, 공포는 일상이었다. 신체를 사용하는 스포츠의 특성상 폭력은 자연스럽게 수반됐고 특유의 도제식 훈련법으로 인해 스포츠는 점점 더 폐쇄적이며 고립된 성향을 띄게 됐다.

그렇게 성적에 대한 과도한 맹신으로 인해 지도자와 선수라는 수직관계는 한쪽이 다른 한쪽에 일방적으로 가하는 폭력을 정당화 할 수 있는 구조가 됐다.

이후 복종을 강요하는 성폭행으로 연결이 됐고, 여기에 한국 특유의 군대 문화가 섞이면서 폭력은 '지도 및 교육'이라는 이름 하에 자행되는 도구로 변질이 됐다.

최숙현이 당한 가혹행위 역시 선수 본인을 폭행하는 것이 아닌, 다른 선수에 폭력을 행사하고 이에 대한 죄책감을 최 선수에게 돌려 심리적으로 고통을 주는 방식도 있었다. 전형적인 군대식 가혹행위 중 하나다.

프랑스 AFP 통신은 "한국 사회는 경쟁이 치열하다. 하계 및 동계올림픽에서 정기적으로 메달 순위 10위 안에 든다. 하지만 체육계에서는 이기는 것이 사실상 전부이며 신체적, 언어적 폭력이 만연해 있다"라며 한국사회에 만연된 왜곡된 경쟁의식을 지적했다.

설령 문제가 생겨도 알음알음 자체 조사로 처리하는 체육계 관행 역시 폭력에 일조했다. 지난 2018년 대한체육회 스포츠 폭력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1000명의 선수를 대상으로 체벌을 당했을 때,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는 대답이 70%가량을 차지했다. 해결도 안 되고, 보복만 있고 선수 생활도 끝이라는 두려움이 이들의 발목을 잡았다.

전문가라는 틀 안에서 체육계는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그들만의 왕국이 됐고, 경기 출전이나 선수 선발권, 팀의 입단 등 인사권을 꽉 쥐고 있는 지도자는 절대 권력자가 됐다. 이에 동조하지 않거나 저항하는 순간, 선수 생명은 그대로 끝이었다.

자유분방한 요즘 세대의 젊은 선수들마저 이러한 '구조적' 문제에 고개를 숙였다. 설령 신고를 해도 아무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 상황을 지켜보며 망연자실했다. 그렇게 최숙현은 지난 6월 25일 스포츠인권센터 조사관과 통화를 한 뒤 26일 오전 생을 달리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대한체육회, 스포츠인권 독립기구 절실

문재인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체육계는 관행적으로 이어져 온 낡고 후진적 행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훈련에 가혹행위와 폭행이 따른다면 설령 메달을 딴다고 해도 값진 일이 될 수 없다. 스포츠 인권을 위한 법과 제도가 아무리 그럴듯해도 현장에서 작동되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다"라고 강조했다.

최숙현의 아버지 최영희 씨는 지난 2월 경주시청에 가혹행위 내용을 신고, 3월에는 대구지방경찰청과 검찰청, 4월에는 대한체육회 클린스포츠센터, 6월에는 대한철인3종협회에 피해를 호소했다. 갖춰진 시스템을 통해 어떻게든 목소리를 냈지만 돌아온 것은 무관심뿐이었다.

특히 진정서를 받고도 대처에 미흡했던 대한체육회가 논란의 중심에 있다. 작년 조재범 코치 폭행 및 빙상계 관련 논란이 터졌을 때도 체육회는 개선의 목소리를 냈지만 이번 사태로 인해 또다시 허공의 외침으로 전락했다.

메달을 포기하더라도 온정주의 문화를 철폐하겠다던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최숙현의 발인 직후, 강원도 춘천골프장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해 논란을 빚었고 이번 사태에 대해서도 그저 "뿌리 뽑겠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스포츠인권센터, 클린스포츠센터와 같은 인권 보호 기구는 장식에 불과했고 제대로 작동조차 하지 않았다. 매번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대처뿐이었다. 이처럼 대한체육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다보니 현장에서는 오는 8월 출범할 스포츠윤리센터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지난 7일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오는 8월 선수 인권보호를 위한 독립기구인 스포츠윤리센터를 출범시키고 스포츠현장에 대한 법률 지원 및 인권 침해자에 대한 무관용 원칙을 적용, 정부 차원에서 가능한 모든 대책을 강구하겠다. 스포츠 분야 특별 사법경찰 제도 도입도 추진하고자 한다"고 대처 방안을 설명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새롭게 담근 술은 이제 막 발효를 시작하는 신선한 술이다. 하지만 이를 담고 있는 부대가 이전의 것이라면 의미가 없다. 딱딱하게 굳어진 옛 부대는 발효될 새 술의 팽창을 감당할 유연성이 떨어진다. 부대가 터지거나 술이 모두 상한다.

새롭게 출범하는 스포츠윤리센터 역시 마찬가지다. 기존 스포츠 인권을 담당하던 각 센터가 하나로 통합되는 과정에서 이전의 부대가 섞인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체육계의 만연한 악습의 고리를 이번 기회를 통해 반드시 끊어낸다는 생각으로 시스템을 전면 개선할 필요가 있다.

김성태 스포츠한국 dkryuji@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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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13, 2020 at 04:03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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