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올림픽 남자 높이뛰기 우상혁이 지난 1일 도쿄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결선에서 한국신기록 2.35미터를 성공한 후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저변 확대와 전문 체육 육성 간 차이는 무엇일까. 두 가지는 상반된 개념일까.
도쿄올림픽 전후 저변 확대와 전문 선수 육성에 대해 갑론을박이다. 국제대회 성적을 올리는 방법으로 저변 확대가 맞을까, 전문체육 육성이 맞을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두 가지는 시간이 지날수록,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과정과 목적이 상이하다. 그렇다고 둘이 상반된 게 아니다. 서로 보완해야 시너지 효과를 내는 철저하게 상호의존적 관계다.
저변 확대는 스포츠를 즐기는 층을 확장하자는 것이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에 반대할 사람은 별로 없다. 저변이 확대되면 종목 인구가 많아진다. 시설도 활발하게 활용된다. 레슨시장, 용품시장, 이벤트시장 등도 산업화된다. 해당 종목을 잘하는 어린 재목, 꿈나무도 많아진다. 입시 등을 이유로 운동을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도 줄어든다. 이게 출중한 전문 선수를 배출하는데 밑거름이 될 수 있다.
저변 확대를 통한 전문 체육 육성을 주장할 때 잊어서는 안 되는 게 있다. 사회적, 교육적, 물리적, 문화적 환경이 그걸 지원하고 있느냐다. 그 종목을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만으로 전문 체육이 자동적으로 육성되는 건 결코 아니다.
황선우가 지난달 27일 일본 도쿄 아쿠아틱스센터에서 열린 도쿄 올림픽 수영 남자 자유형 200m 결승을 마친 뒤 기록을 보면서 아쉬워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에서 축구를 하는 어린 친구들은 엄청나게 많지만 아직 아시아 시장에서도 강호도 떠오르지 못하고 있다. 그건 육성 시스템, 사회적 인식, 지도자 수준이 미약하기 때문이다. 반면 일부 프로종목을 제외하고 전문 선수 육성보다는 생활체육에 전념하는 미국에서는 많은 종목에서 세계 최고 선수들이 나온다. 미국은 왜 그럴까. 어릴 때부터 노인이 될 때까지 맘껏 운동할 수 있는 환경, 그걸 사회적으로 인정하고 지원하는 시스템이 조성됐기 때문이다.
미국에는 체육시설이 참 많다. 학교에서도, 커뮤니티에서도 그렇다. 청소년들이 입시에 덜 매달린다. 대학생도 운동을 즐긴다. 사회도 운동을 잘 하는 사람을 높게 평가한다. 게다가 아시아 사람보다는 일반적으로 신체조건도 좋은 편이다. 출중한 선수들은 교육적, 문화적, 사회적 환경이 적절하게 융화한 결과물이다. 미국인은 운동을 차별하지 않고 운동을 스포츠를 넘어 삶, 그 자체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 배구 여자대표팀이 지난 4일 일본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 배구 8강전에서 터키를 꺾고 4강 진출에 성공한 뒤 기뻐하고 있다.연합뉴스
미국아이비리그 출신이 올림픽 메달을 딴 경우는 너무 많다. 리우올림픽까지 스탠퍼드는 금메달 139개, 은메달 73개, 동메달 58개를 땄다. UCLA는 총 233개, 버클리는 207개, 미시건은 144개다. 하버드는 108개, 예일은 107개다. 이들이 좋은 머리에 운동능력가지 타고났기 때문이 아니다. 뉴욕타임즈는 아이비리그 대학 출신이 좋은 성적을 내는 비결로 “대학이 스포츠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유망주와 능력 있는 코치를 영입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전문 선수 육성은 저변 확대와는 지향점 자체가 다르다. 전문 선수는 기록과 성적을 끌어올리는 게 목표다. 이를 위해서 자기 자신을 극한까지 내몬다. 극한을 극복하기 위한 초인적인 노력이야말로 전문 선수 의무다. 슬슬 놀면서, 하고 싶을 때 하고 싶은 만큼만 훈련해서는 세계 정상급 선수가 될 수 없다. 마이클 조던은 어린 시절 얼마나 운동을 했느냐는 질문에 “나는 운동할 때 시계를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스즈키 이치로는 과거 일본프로야구 MVP가 됐을 때 “나를 타고난 천재라고 말하지 마라. 나보다 더 많이 훈련한 선수가 있다면 MVP 트로피를 가져가라”고 말했다. 헹크 아론은 “훈련을 정말 열심히 하면 야구공이 수박만하게 보인다”고 말했다. 김연아도 처음 점프를 할 때 수십번 넘어졌지만 반복 훈련을 통해 극도로 긴장된 상태에서도 고난도 점프를 성공할 수 있는 세계 최고 기량을 갖추게 됐다. 정상급 스포츠 스타치고 남들보다 더 많고 더 강한 훈련없이 최고 선수가 된 경우는 거의 없다.
우리나라에서 전문 선수라고 하면 누구일까. 프로 선수, 실업 선수일 것이다. 폭을 조금 더 넓힌다면 전문 선수를 꿈꾸는 대학선수, 조금 더 넓힌다면 전문 선수를 희망하는 고교 선수도 포함될 것이다. 이들이 진정으로 전문 선수가 되기를 원한다면 기록과 성적과 싸워야 한다. 전문 선수는 자신이 선수로 활동하는 대가로 돈을 받는 사람이다. 선수가 직업인 사람이고 소속팀이 직장이다. 성적을 내기 위해, 기록을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은 권리인 동시에 의무다. 자기가 하고 싶을 때, 하고 싶은 만큼, 정당하게 운동해서는 결코 ‘선수’가 될 수도 없고 될 자격도 없다.
즐긴다는 것은 놀면서 하는 게 아니다. 진정으로 즐긴다는 것은 자신도 모르게 그 활동에 자발적으로 몰입하고 모든 걸 쏟아냄을 의미한다. 기록 상향, 목표 달성을 위해 힘들고 괴로운 과정을 감내함도 뜻한다. 전문 선수들이 ‘소위’ 즐기면서 남들보다 뛰어난 기량을 유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록 달성, 목표 달성을 위한 열정이 사라지는 순간, 전문 선수는 동호인 선수가 된다.
야구대표 선수들이 지난 7일 일본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야구 도미니카공화국과의 동메달 결정전. 6-10으로 패한 뒤 괴로워하고 있다. 연합뉴스
올림픽이 끝났다. 올림픽에 나서는 선수들은 대부분 성적을 목표로 하는 전문 선수들이다. 일부 고교생도 있지만, 그 또한 전문 선수를 꿈꾸며 운동하는 꿈나무다. 전문 선수로서 진정으로 최선을 다해 과정을 준비했다면 순위, 성적에 무관하게 그를 칭찬해야 한다. 그런데 과정이 소홀했다면 그를 비판하는 게 맞다. 그는 성적으로, 순위로 보여줘야 하는 전문 선수이기 때문이다. 그게 직장에서 전문 선수에게 월급, 연봉을 주는 이유다.
여자배구는 4위와 야구 4위는 완전히 다르다. 여자배구는 4강 전력에 크게 못 미쳤다. 야구는 최소 동메달은 땄어야 했다. 황선우, 우상혁은 메달을 따지 못했지만, 우리를 놀라게 했고 감동시켰다. 둘 모두 기대 이상을 기록을 보였기 때문이다. 태권도는 품격은 유지했지만, 노골드는 비판받아야 한다. 양궁은 세계 최강임을 메달수로 입증했다. 저변이 넓지 않은 종목에서 좋은 성적을 낸 비결은 전문 선수를 육성했기 때문이다.
여자배구, 양궁, 황선우, 우상혁에 환호하는 마음과 야구, 태권도, (올림픽에 출전하지도 못한) 남자배구·남자농구를 비판하는 마음은 같은 곳에서 출발하고 같은 곳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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